• 최종편집 2024-03-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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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 접속 장애로 겪었던 어려움과 깨달음
    [시니어투데이] 나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밤에는 1시간씩 동호인끼리 영어 번역 공부를 하고 있다. 전화를 이용하다가 얼마 전부터 화상회의 앱 ‘줌(Zoom)’을 통해서 화상으로 서로 얼굴을 보며 하고 있었다. 그런데 3주 전부터 줌(Zoom)에 연결이 안 되어 나만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속상해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아무런 접속 장애 없이 잘 사용했는데 웬일일까? 그런데 연결만 하려고 하면 내 휴대폰의 와이파이 신호가 사라지면서 연결이 안 되었다. 공유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도, 휴대폰을 껐다가 다시 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접속을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나를 기다리지 말고 공부를 시작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혼자서 아무리 애써보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은 포기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각종 해결 방법들을 시도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 후에 휴대폰에 와이파이 신호 세기가 강하게 표시되기에 다시 연결해 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알 수 없는 장애로 연결이 안 된다”는 메시지만 뜰뿐 접속이 안 됐다. 그날도 나는 허탕을 쳤다. 몇 시간을 씨름하여 교재를 다 번역해 놓고 공부 시간만 기다렸는데 접속이 안 되니 속이 많이 상했다.   이 방면에 능숙한 지인에게 요청해서 시도를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아내의 휴대폰으로 하면 접속이 잘 되었다. 전화기 때문인 것 같아 A/S 센터에 가보았지만, 휴대폰의 문제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A/S 센터에서 공유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통신사에 고장 신고를 하여 온라인으로 점검을 해보아도 정상이라고 했다. AS기사가 방문을 해서 전파 측정기로 검사하더니 신호가 잘 잡히니 공유기는 정상이라고 했다.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Zoom 연결”, “와이파이 끊기는 문제”를 몇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어디엔가 전화기의 와이파이 문제를 해결할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마지막으로 휴대폰에서 “네트워크 설정 초기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지시한 대로 따라 해서 초기화를 시키고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연결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연결이 되었다. 2주 동안 못 보았던 동호회 회원들의 얼굴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는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 줌(Zoom)으로 한창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휴대폰에 “데이터가 다 소진되어 이제부터는 요금이 부과된다”는 메시지가 뜨는 것이 아닌가.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데이터가 모두 소진되어 있었다.   추가 사용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요금이 부과되어 있었다. 그동안 줌(Zoom)을 연결하는데 와이파이가 아닌 휴대폰 데이터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방법은 공유기를 바꾸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새로 구입한 공유기에는 안테나가 네 개나 달려있었다.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공유기 밑면에 비밀번호가 있다고 쓰여있다고 했다. 그 번호를 입력했더니 와이파이 기호가 떴다. 이제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드디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지금도 전에 사용하던 공유기에서는 아내 휴대폰은 되고, 내 것은 왜 안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디지털 기기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자주 애를 먹이지만, 시니어들에게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그러더라도 지치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가다가 보면 끝내는 해결할 길이 나오는 것이다. 시니어들의 자산은 풍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축적된 지혜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들의 경쟁력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이 또한 시니어들의 저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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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1-06-07
  • SNS 사용에서 주의할 점과 대응 지혜
    [시니어투데이]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도착하는 이메일은 그중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일단 삭제하고 남은 것들을 시간 나는 대로 읽어본다.   그중에 한 SNS에 ‘친구 요청’이 있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그 SNS에서 보내주는 이메일 가운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오는 요청이 많아 보통은 삭제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Jennifer라는 사람으로부터 요청이 왔다. 외국인이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경우라서 열어 보았다. 나의 SNS 계정에 들어와 내가 쓴 글들에 ‘좋아요’ 표시를 여러 번 해 놓았다.   계정에 들어가서 둘러보니 귀엽게 생긴 아가씨다. 군복을 입고 동료들과 찍은 사진도 여러 장 보였는데 아마 여군인 모양이다. 그런데 며칠 후 메시지가 와있어 열어보니 ‘제발 좀 친구로 추가해주세요’라고 한글로 쓰여 있었다. 친구 요청을 거절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다시 요청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까짓것 별일이야 생기겠나 싶어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내 SNS 계정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기는 시리아에 있는 미국 군인인데 반갑다고 인사를 보낸 것이었다. 나도 반갑다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메일을 열었는데 별도의 메신저로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열어보니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자기는 한국계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7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지만, 씩씩하게 자라서 군인이 되어 지금 시리아에서 정보통신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커다란 시련을 겪어서 힘들었겠지만 씩씩한 군인이 되었다니 장하다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시리아라면 한밤중 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몇 시쯤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새벽 2시라고 했다. 그래서 밤이 늦었으니 다음에 얘기하고 어서 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야간 근무 중이라 괜찮다고 했다.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전화번호를 묻는다. 가르쳐 주었다.   잠시 후에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연결하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통화는 안 되었다. 잠시 후에 메시지가 왔다. 군사시설이라서 보안 때문에 통화가 어렵다고 하면서 ○○톡을 하느냐고 물었다. 물론이라고 했더니 ○○톡 아이디를 묻는 것이었다. ○○톡은 아이디가 없이 그냥 이름으로 등록이 되었는데 아이디라니? 그래서 아이디는 없다고 하니 잠시 후에 자기 아이디를 알려주며 친구추가를 부탁했다.   우여곡절 끝에 ○○톡 연결이 되었다. ○○톡으로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통화할 수 없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점차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SNS 프로필을 보고 가장 믿을만한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했다. 자기는 자살폭탄 공격이 심한 이곳에서 군에서 퇴직하여 민간인으로 살고 싶다.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가 사촌들과 조부모님도 찾아 정착하여 살고 싶다. 자기를 좀 도와 달라”는 요지의 부탁이었다. 나는 시골에 사는 노인이라서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갈수록 다음과 같은 놀라운 요지의 말을 늘어놓는다. 수색 중에 큰돈을 발견했다. 아마 저항군들의 군자금인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이것을 네 명이 나누기로 했는데 자기 몫은 5백만 달러쯤 된다. 달러가 가득 들어 있는 철제상자와 전투 현장의 사진들도 보냈다.   “한국 정착자금으로 사용할 이 돈 상자를 화물로 보낼 터이니 보관을 부탁한다. 자기는 물건이 도착한 2주 후에 한국에 입국하겠다. 액수의 30%를 수고비로 드리겠다. 주소를 알려 달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도 싫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 노인이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제발 도와 달라. 당신이 자기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매달린다.   나는 아침에 아내와 공원에서 조깅한 후 시장에 들려오기로 한 터라 더는 붙들고 있을 수도 없어 그냥 ○○톡을 끝내고 외출 준비를 했다.   어린이날 손자들을 데리고 아들 내외가 왔을 때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고 얘기를 하며 ○○톡을 보여주었다. 아들은 이런 사건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가끔 있었던 일이라고 말하며 낯선 메시지는 무시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SNS에 프로필을 노출하다가 보니, 편리함도 있지만,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없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과도한 사생활이나 개인정보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SNS가 편리하고 관계를 통해 존재의 힘을 과시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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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1
  • 과학도를 꿈꾸며 2021년 대학 생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시니어투데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팬데믹(pandemic)으로 온 세상이 힘들었던 2020년이 저물어가던 즈음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대학에 지원한 외손자의 합격 소식이었다.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외손자가 희망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기에 무척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외손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유난히 과학을 좋아했고, 학교 대표로 출품한 각종 과학 관련 대회에서 자주 입상하여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아이였다. 명절 때 외가인 우리 집에 오면 과학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수준이 높아 공대를 나온 나도 대답하는 데 쩔쩔매기가 일쑤였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을 했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 외에는 아는 것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고 사양했다.   한번은 가족 모두가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큰일이 벌어졌던 일도 있었다. 외손자가 중학생 때였는데 엄마, 아빠가 모두 외출하고 없는 시간에 혼자서 주방 식탁 한쪽에 실험도구를 차려놓고 화학실험을 하다가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외손자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 얘가 입원해 있다는 화상 전문병원에 가보니 얼굴과 손이 온통 붕대로 감겨있어 눈앞이 캄캄했었다. 다행히 몇 달 후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여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얘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종이로 만든 우주선을 건네고 갔다. 어느 날 책장에 올려놓은 그 종이 우주선을 보고 소망을 담아 적어 본 시다.   종이 우주선   책장 위에서 발사대기 중인 U-3069호 종이 우주선 언제 창공으로 솟아오를까?   우주과학자가 되겠다는 꽃 같은 우리 외손자 놀러 와 만든 꿈을 기도 속에 키워주었다.   주방 한쪽 너의 작은 실험실에서 들린 폭발음은 먼 훗날 네 종이 우주선이 날아오를 전주곡이었을까.   온통 붕대밖에 보이지 않던 그날 병실에서는 가슴이 내려앉았었는데   이제는 그 꿈 펼칠 나날 그리며 쉼 없이 달려가는 네 모습이 할아버지 마음에서 행복하게 솟아오르고 있구나.   나는 과학도로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될 출발을 앞둔 외손자와 이와 같은 길을 걷게 될 많은 젊은이에게 축복과 함께 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과학자는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할까.   과학 연구에 대한 과학자의 태도는 인류의 삶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것이다.   교통기관의 발전에 이바지함으로써 인간의 활동 범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질병과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는 신비로운 힘이 되었다. 이제 인공지능, 로봇 등의 발전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학자들이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인류에 대해 남다르게 따뜻한 감성을 지녀야 한다. 겸손한 마음과 뛰어난 공감력 및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룬 성과이고 이루어갈 미래인데 왜 그래야 하는가?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부모와 두뇌 및 신체적 조건 그리고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은 한 개인은 자신과 인류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수한 자질을 지닌 것과 그에 따른 노력으로 얻은 결과는 그 개인의 영광임과 동시에 인류의 공적 자산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삶은 그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연구하는 분야의 수많은 선행연구자의 연구 성과와 그를 가르쳐준 많은 스승 그리고 국가적 지원 등 주변의 다양한 도움도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과학자들은 남다른 시대적 사명을 지녀야 하고,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본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고 그에 따른 사명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남다른 자질을 지닌 사람은 그만큼 영광도 크기에 그에 따른 사명감을 보람으로 여기는 넓은 마음과 안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뜨거운 열정과 큰 노력으로 이루어낸 대학 입시 결과로 과학도로 출발할 시점을 앞둔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자신의 발전을 통해 인류의 행복에도 이바지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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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1-01-11
  • 차량용 빗물받이 교체, 직접 해결하다
    [시니어투데이] 언제부터인가 내 차의 조수석 뒤쪽 좌석 창문 위에 달려있던 빗물받이가 한쪽이 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눈에 거슬리기는했지만, 중요한 부품도 아니어서 그대로 타고 다닌 지가 1년이 넘은 것 같다. 그러다가 얼마 전 좁은 길을 지나는데 물건을 내리려고 주차하고 있던 화물차 기사가 갑자기 뒷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에 내 차의 조수석 백미러가 떨어져 나갔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는 놀라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려서 보니 앞바퀴 윗부분과 그쪽 문에도 흠집이 생겨있었다. 물론, 화물차 기사가 100% 자신의 과실이라고 인정하여 그쪽 보험사의 부담으로 수리를 다 마쳤다.   수리를 마치고 며칠 후에 보니 조수석 창문에 부착되어있던 빗물받이도 일부가 깨져 있는 것이었다. 그때 사고로 깨진 것이 확실하지만, 뒤늦게 청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를 알고 나니 눈에 거슬려 과감하게 새것으로 교환하기로 했다.   집 부근의 카센터에 가서 교환을 부탁했더니 일을 맡지 않으려 했다. 차량용 부품점에 가면 부품을 살 수 있으니 거기에서 사서 붙이라는 것이었다. 수리비를 많이 받을 수도 없는 하찮은 일에 매달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센터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차량용 부품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순간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차량용 빗물받이를 검색하니 차종별로 많은 제품이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서 내 차에 알맞은 빗물받이를 선택하여 주문했더니 며칠 후 물품이 도착했다.   택배로 도착한 빗물받이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파손된 것을 떼어내기만 하면 나도 쉽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 조각이 떨어져 나가도 일부는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수리를 의뢰하러 카센터로 갈까 하다가 좀 더 해 보기로 하고, 혹시 몰라 비상용으로 글로브 박스(glove box)에 넣어두었던 드라이버를 몇 년 만에 꺼내 들었다. 오늘따라 기온도 낮았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힘을 내서 드라이버를 틈새로 끼워 넣는 등 한참 동안을 씨름해서 겨우 모두 떼어낼 수 있었다.         새로 산 빗물받이에는 양면 접착테이프가 붙어있었고, 그 표면에서 보호용으로 부착된 종이를 떼어낸 다음 적당한 위치에 단단히 붙였다. 이렇게 하면 될 것을 그동안 깨어진 빗물받이를 달고 다녔던 것이 안타까웠다.   요즘은 차량용 이외에도 소비자가 손쉽게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용품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시도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불편함을 처리하고 발전적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용기와 도전 의식이 필요하다.   특히, 시니어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보다 체력과 역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시니어들에게는 일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가 있지 않은가.   장비를 쓰는 것이나 조작과 사용이 편리하게 만들어진 용품들이라면 이를 하는 데에서는 힘보다는 지혜가 더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의 강점이고 더욱더 힘차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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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0-11-30
  • 컴퓨터 없는 생활에서 느낀 소회
    [시니어투데이] 내가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가 자주 말썽을 부린지가 여러 달 되었다. 아들이 쓰던 것을 가져와 오래 써왔다. 그동안 바이러스 때문에 포맷도 여러 번 했다. 얼마 전부터는 커서가 꼼짝하지 않기도 하고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정상적으로 컴퓨터를 끄지도 켜지도 못해 강제로 전원을 꺼야 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본체를 떼어서 여러 차례 컴퓨터 수리점에 맡겨야 했다. 컴퓨터 기사를 집에 불러 수리를 맡길 수도 있지만, 출장비를 주어야 하고 또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서 내가 가지고 가서 수리하는 게 편했다. 처음에는 수리해 온 컴퓨터에 다시 케이블을 연결할 때는 전원 케이블, 인터넷 선, 그리고 모니터, 키보드, 프린터, 스피커 등 많은 선 들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도 여러 번 했더니 이력이 생겨 눈감고도 할 수가 있을 정도로 숙달이 되었다.   그러다가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데 또 갑자기 커서가 꼼짝을 않는다. 강제로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켰더니 한참 쓴 글이 다 날아가 버렸다. 다시 작업하다가 한 5분쯤 후에는 또 그런 현상이 반복되더니 결국은 켜지지도 않았다. 또 수리점에 가려고 케이블들을 떼어내는 것을 보던 아내는 이참에 아주 새것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했다. 머리가 허연 사람이 컴퓨터를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더는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젠 나도 툭하면 멈춰버리는 컴퓨터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것을 사기로 했다. 이렇다 보니 컴퓨터를 사려고 인터넷 쇼핑몰에도 들어갈 수 없어서 아들에게 연락했다. 아들은 얼마 후 컴퓨터를 주문했다고 연락을 했다. 마침 추석 때문에 택배가 많아서 연휴가 끝나야 배송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컴퓨터가 없으니 컴퓨터와 함께 시간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매주 영어 공부를 하고 있기에 회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하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컴퓨터를 좀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곤란하다고 한다. 읍사무소에 물어도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는 없다고 한다. 도서관에 연락해보니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은 있지만, 코로나19로 도서관 전체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성당 교우에게 컴퓨터 좀 쓰자고 전화로 부탁하고 방문을 했다. 메일을 열어보니 며칠 동안 벌써 100여 통이 들어와 있었다. 우선 회원들에게 자료를 발송해주고 나서 문서를 열어보았으나 열리지 않았다. 해당 문서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궁리 끝에 복지관에라도 가서 이메일도 보내고 내가 맡은 한 페이지라도 번역작업을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면이 있는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했더니 복지관에 와서 컴퓨터를 사용하라고 허락을 해주었다.   차로 30분을 달려 복지관에 갔더니 예전에는 그렇게 비좁던 주차장이 대부분 비어있어 적막감마저 들었다. 강의를 듣던 인문학반 컴퓨터에서 회원들에게 메일을 발송하고 나서 내가 공부할 자료를 열었는데 문제는 프린터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가지고 간 USB에 문서를 저장한 후 사회복지사에게 인쇄를 부탁했다. 급한 대로 내가 발표할 두 페이지를 번역하여 프린트하고 나니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일 처리를 하고 보니 컴퓨터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마침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를 중계하고 있어서 결승이 끝날 때까지 열흘간은 TV를 보느라 거의 온종일 컴퓨터 없이도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여러 시간 TV를 혼자서 차지하지 못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노래를 좋아하지도 않던 아내가 가수 김호중의 열성 팬이 되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데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주문했던 컴퓨터가 도착해서 아들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있다며 전화를 했다. 다음날 내 서재에는 새 컴퓨터가 놓였다. 이제 컴퓨터에서 문제가 발생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도 상쾌해졌다. 우선 쌓여있는 200여 통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난 후 다시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이제 컴퓨터는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메일 주고받기, 인터넷 쇼핑몰 이용, 인터넷 뱅킹, 인터넷 서핑 등 컴퓨터의 용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이처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만큼 더 편리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시니어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지식을 갖춤으로써 더욱더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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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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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경기에는 하프타임이 있다. 전반전이 끝나면 잠시 쉬며 후반전을 대비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코치가 선수들에게 전반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후반전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대비해 준다. 이때 코치의 지도에 집중하지 않거나 대책 없이 임하면 후반전은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청년 시절을 보내고 중년을 지내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될 때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제대로 갖지 않으면 후반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인생의 하프타임이 중요한데 우리 시니어들에게는 이 말이 아주 생소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우리의 지난 시절은 일에 파묻혀 헤어나질 못했고, 빡빡한 일정에 잠을 설쳤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자녀 양육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다. 직장일 뿐만 아니라, 각자 맡은 여러 분야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기 바빠서 하프타임 따위는 감히 엄두도 못 냈다.   그러면 인생의 하프타임은 언제일까. 인간수명을 100세로 볼 때 40∼50세가 이 시기라면 시니어들에게는 하프타임이 이미 지나가고 없는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프타임은 나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하프타임은 중년을 넘어서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앞날을 대비하려는 때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100세는 장수에 속하니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장수를 과연 복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장수가 복이 되려면,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야 한다. 아울러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야 한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는 쉽지 않다. 경제의 안정과 건강, 정신적 풍요는 분리적인 요소가 아니다. 이는 삼위일체적인 차원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는 것인지 고민은 더욱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이 있고 답도 있게 마련이다. 그 답을 축구경기에서 찾아보자. 하프타임은 경기력을 혁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지난 11월 15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의 축구경기에서 전반전에 지던 한국이 후반전에 역전하였다. 이런 결과는 한국이 하프타임에 적절한 대책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시니어들도 하프타임을 지혜롭고 알차게 보내야 한다.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꿈꾸며 꼼꼼하게 계획해야 한다. 이 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코치다. 시니어들에게도 이런 역할의 코치가 필요하다. 내 속사정을 잘 알아주고 진지하게 답해주는 멘토(mentor)가 필요하다.      남들은 적절한 멘토를 만나기가 어렵다지만, 나는 너무 쉽게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다. 우리 시니어들에게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해주는 멘토가 있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적인 사고와 혁신적 발상으로 현실화를 돕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우리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하려는 열정과 지혜로 불타오르는 헌신의 대명사 박요섭 지도교수가 바로 그 멘토이기 때문이다.     인문학 시간은 나의 하프타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하여 내 인생이 새롭게 바뀌었다. 무의미하게 보내던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방구석의 늙은 존재가 아니라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경륜과 지혜가 시니어의 자존감이고, 그것들이 진귀한 보석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지난 내 삶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는 내 인생의 도서관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묻혀있는 보석이 젊은이와 또 다른 시니어들에게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데 자부심마저 든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고 그것이 무엇일까를 찾아보았다. 참 인생은 초월적 삶을 통하여 이웃에게 이타적인 사람됨이 아닌가. 그렇다면 부족하지만 나도 누군가의 멘토로 살고자 한다. 이를 이루어 보자. 이 길을 걷는 학습 과정이 험하고 어렵더라도 멈춤 없이 전진해보자.   나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그 출발 역시 인문학 강좌에서 해답을 얻고 있다. 인문학 강좌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다가온 글짓기, 내게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 꺼려왔던 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는 글쓰기가 우연한 만남이라기보다 필연으로 자리 잡았다.   망설였던 글쓰기였지만, 어렵사리 썼던 글로 박 교수님의 칭찬을 받고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 박 교수님께서 멋지게 낭독해주시고 아낌없이 칭찬해주셨을 때 나는 최고의 명문대학교에서 수석이라도 한 것 같이 기뻤다. 그때 나는 물론 듣는 모두가 진한 감동에 휩싸였다. 그 시간이 잠시 멋쩍고 수줍어 얼떨떨해졌었지만, 그 후 힘을 얻어 5편이나 더 썼으니 내겐 대단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식과 경륜이 늘고 인격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공부하지 않으면 무식이 늘고, 절제하지 않으면 탐욕이 늘고, 성찰하지 않으면 파렴치만 는다. 나이는 그냥 먹지만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시니어들이여! 하프타임을 마련하고 미래를 계획하라. 언제라도 좋으니 우리 인문학반에 와서 하프타임을 마련함으로 값있는 노후를 준비하라. 왜냐하면, 인문학은 사람답게 사는 것을 고민하게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성공하는 사람은 목적과 비전이 있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현재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고 목적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지 않듯 잃어버린 인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늙어 감을 두려워 말고 오히려 남은 시간을 아껴 쓰자. 마지막 날에 인생을 너무 헛되게 살았다고 탄식하게 되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자기 관리하기에 따라 노년은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슬프고 고달파지기도 한다. 시간을 아끼고 보람 있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나는 결심한다.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 내게 맞는 하프타임을 계속해 잘 관리해 갈 것이다. 하루는 새벽에, 한 주간에는 인문학 시간을 하프타임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하여 육체의 남은 때를 맑은 영혼과 함께 당당한 시니어로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이렇게 결심한 오늘이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고 덤 인생의 시작이니 마음껏 자축하며 오늘을 힘차게 출발하련다. 최병우 취재위원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12-15
  • 내 마음에 눈처럼 쏟아지는 조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어느덧 또 한 해가 지나는 시점이다.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조부님 시문집을 들춰 보았다. 조부님과 관련된 자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특히 조부께서는 나를 무척 아끼셨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조부께서는 내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철이 들었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손자인 내가 태어났다고 조부님께서는 선비의 체면 손상에도 크게 개의치 않고 나를 거의 품에 안고 사셨다는 것이다. 나를 안고 동네를 두루 다니시면서 늘 기뻐하시며 자랑하셨다고 한다.     내 탄생을 이렇게 좋아하셨던 조부님께서 내 나이 세 살 때 세상을 떠나신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이렇게 나를 아끼고 사랑하셨던 조부님을 평생 그리워했다. 왜냐하면, 매우 뛰어난 학식과 인품을 지니셨던 조부님의 도움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내게는 늘 허전함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안타깝게도 아버님도 내가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나버리셨다. 내게는 가혹한 일이 계속되었다. 어머님마저도 내가 열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이런 과정에서 조모님은 혹여 내가 약해질까 봐 늘 나를 격려하시며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 조모님은 나에게 아버지요, 어머니와 같은 분이셨다. 1982년 돌아가신 조모님을 생각하노라면 지금도 시린 가슴에서 그리움이 전설처럼 흰 눈으로 고요히 내려앉는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집안은 씨족 중심의 마을에서 살았던 덕택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대로 이어 온 집안의 전통으로 인해 우리 집에는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이 가운데에는 민족 문화 유산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물건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방앗간을 운영했다. 방앗간은 동네 사람들의 많은 소식이 오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방앗간은 오늘날 플랫폼사업과 같은 역할도 감당했던 곳이다. 우리 집은 방앗간 운영으로 비교적 살림이 넉넉했고, 조부님께서는 훈장을 지내셨으니 지적으로 좋은 평이 나 있었다.   조부님과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움이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조부님의 학문적 배경 덕택에 우리 집에서는 늘 책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중·고교를 다니면서도 조부님께서 물려준 지적 영향은 나를 지키는 힘이 되었고 늘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바로 가풍이고 개인을 넘어서는 가문의 숨결이다.       독일의 언어학자이고 철학자였던 훔볼트는 개인의 인성이 사회의 인성을 형성하는 바탕이라고 했다. 한 개인은 사회와 유기적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내 안에는 조부님의 피가 흐르고 있듯이 조부님의 정신도 존재한다.   유구하게 흘러온 가문의 피와 정신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왔다. '나'는 이런 모든 것을 의미한다. 유유히 흘러온 영원한 삶의 숨결이 바로 오늘의 나와 나의 인생이다. 누구도 단절된 세계를 형성할 수는 없다.     나의 조부모님이 지녔던 지적 세계와 삶의 여정은 오늘 나에게 평온하게 온고지신되고 있다. 오늘 조부님의 시문집을 보노라니, 조부님과 조모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함박눈처럼 한없이 쏟아진다.       지금 나는 고향을 떠나 화성에서 둥지를 틀고 있다. 4남매의 아버지가 되어 복된 삶을 살고 있다. 이 모든 힘의 원천이 조부님의 지적 역량과 조모님의 사랑이다.   두 분의 삶은 면면히 이어온 그 윗세대들의 결실이었으리라. 나의 삶에도 세대를 이어 내려온 조부모님의 숨결이 고요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아! 내 자식과 손자들도 나에 대한 그리움을 고요히 내리는 첫눈의 아름다움처럼 행복하게 추억하며 아늑하게 그려낼 수 있기를 참 마음으로 소망해 본다.   권영춘 취재위원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12-14
  • 질경이를 바라보며 얻은 깨달음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가 어울려 살고 있다. 사랑받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이렇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매우 소중한 것임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질경이도 그렇다.   산과 들은 물론, 길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질경이다. 질경이는 크지도 않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도 아니다. 그 위로 자동차가 지나가도 다시 일어설 정도니 얼마나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강한 생명력만큼이나 약효도 뛰어나 매우 유용한 식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크게 사랑받지는 못하는 식물이다. 왜 그럴까? 질경이는 외형적으로 볼품이 없는 데다 너무 흔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외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키가 훤칠한 나무나 색깔이 곱고 아름다운 꽃에는 관심이 많다. 이런 것들에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것도 필요하지만, 너무 시각적인 것에 치우친 결과다.   사람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면적인 문제보다는 키도 크고 멋지게 생긴 외모에 대해서 더 민감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경제력과도 연결된다. 고가의 의류를 입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 내면의 문제를 파악하기도 전에 그것만으로도 이미 호감을 사게 된다.   겉과 달리 마음속을 쉽게 측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똑같은 꽃을 보고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어디 꽃뿐이겠는가? 이러니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고 교육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항상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칸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람을 자기 삶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은 가장 비열한 행위다.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행복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거는 기대감을 낮추고 과욕을 버려야 한다. 지나치고 허황된 꿈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진정성 어린 복된 꿈을 향해 아름다운 실천을 거듭하며 하루하루를 참되게 살아가야 한다. 이에 대한 규모와 범위는 기계적일 수 없다.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어진 것을 올바르게 깨닫고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숭고하고 위대한 일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천사도 아니요. 짐승도 아니며 생각하는 갈대다”고 말했다. 사람이란 말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존재적 가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가르치고 있다.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생각하고 사리판단을 할 줄 알아야 진정한 사람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셨다”고 쓰여 있다.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한다. 그런데 왜 사람이 하나님을 닮기는커녕 짐승도 하지 않는 짓을 할까. 사람이라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살며 사람들에게 수많은 약효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질경이도 있다. 그런데 사람이 질경이 한 포기만도 못하게 살아서야되겠는가. 우리는 질경이 한 포기, 들국화 한 송이를 보고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남의 시간과 돈을 빼앗는 행태는 인간으로서의 존재적 가치를 스스로 버리는 짓이다. 진정으로 사람으로서 살기 원한다면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 첫 번째는 나누고 베푸는 일이다. 공유를 넘어 공감하면서 공명으로까지 나가야 한다.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바라보자. 그리고 누군가 내 손을 잡고 흐뭇해하도록 두 손을 내밀어 보자. 이런 자세는 사람됨을 깨닫고 존재적 결단을 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은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은 인격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절대 필요한 양식이다. 이러한 인격완성의 양식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교만하고 약해진다”고 말했다.   행복은 겸손과 나눔으로 채워지는 신비로움이다. 행복은 내가 베푼 것 이상으로 크고 넓게 퍼져나간다. 때로 우리는 원치 않게 질경이처럼 밟히며 고난에 처하더라도 겸손하게 자신의 소명을 꿋꿋이 일구어가야 한다. 질경이는 짙푸른 초록색으로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묵묵히 존재의 가치를 발하며 언제나 생명력을 앙양하며 산다. 길가에서 질경이를 바라보며 이런 감동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멋진 질경이들의 합창과 탄성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행복은 그저 근사한 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 깊은데 숨어있는 진실이며 행동하는 양심에서 피어나는 향기요, 꽃이다. “과거 속에 살지 말고 항상 과거로부터 배우라”고 하는 말이 있다.   질경이처럼 아무 불평 없이 자신을 원하는 누군가에게 식재료도 되고, 약효도 되어 주자. 어디 질경이뿐이겠는가. 우리는 이런 자연의 창조 섭리를 바라보며 가장 인간답게 사는 길을 성실하게 걸어감으로써 가장 아름다운 행복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취재위원 유정애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10-04
  • 내게도 치매가 왔단 말인가
       서로 자주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던 친구가 음악회 표가 생겼다며 함께 가자는 연락을 했다. 모처럼의 제안인데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다. 친구의 차를 타고 행사장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주차장은 이미 꽉 차있다. 하는 수 없이 좀 멀리 떨어진 공터에 겨우 자리를 발견하여 그곳에다 차를 주차하고 입장했다.   실내에는 에어컨 가동이 잘되어서 반소매 셔츠를 입은 나는 좀 추운 느낌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데 실내에 조명이 들어왔지만, 유난히 어두운 것 같았다.   친구와 함께 밖으로 나와서 보니 내가 남의 상의를 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내가 좀 춥다고 남의 옷을 입다니…. 나도 치매에 걸린 걸까?” 안내 데스크에라도 가서 옷을 돌려주고 와야 하는데 그 말을 하려니 친구에게도 너무 창피했다. 용변이 급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안내 데스크에 가서 주인에게 돌려주라며 옷을 전했다.   친구에게 어디쯤 있느냐고 전화를 하려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내 전화기가 아니다. 다시 살펴보니 내가 다른 사람의 점퍼를 또 껴입고 있었다.   “아! 정말 나는 치매가 중증인가?”   나는 그만 충격으로 거의 실신 상태가 되었다. 다시 옷을 벗어들고 데스크로 허둥지둥 가다가 마주 오는 사람들과 부딪쳐 넘어지면서 잠을 깼다.   “아! 다행이다. 꿈을 꾼 거구나.”   지난주에 병점 유앤아이센터에서 스페인 합창단의 공연구경을 갔다 왔고 요즘 복지관 합창반에서 치매 방지 합창경연 준비로 연습 중이어서 이런 꿈을 꾸었나 보다. 꿈이었으니 말이지 얼마나 황당하고 창피스러운 일인가?   그러고 보니 나도 가끔 물건을 잃어버리고, 잘 아는 사람 이름도 생각이 안 날 때도 자주 있다. 이렇다 보니 혹 치매의 전조가 아닌가하여 걱정스러워질 때도 있다. 우리 나이에는 흔한 일이라고 나 자신을 달래며 지내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서예 선생님 말씀이 서예를 하는 사람은 치매에 걸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좀 더 열심히 서예 연습도 하고 치매가 얼씬거리지 않도록 즐겁게 또 바쁘게 살아가야겠다. 취재위원 김상태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9-28
  • ‘현재’와 ‘여기’의 깨달음과 ‘더욱더’의 삶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얼른 먹고 가지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이것은 초등학교 때 배우던 노래의 가사이다. ‘옹달샘’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다. 이곳에 가면 때가 묻고 복잡했던 마음이 금세라도 깨끗하게 정화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을 잘 활용한 수련원이 있다. 충주 지역에 ‘깊은 산 속 옹달샘’이라는 곳이 있다. 나는 추석 다음 날 1박 2일로 이곳을 다녀왔다.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숲에서 풍기는 향기가 몸속으로 스며들며 마음마저 편안하게 했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풍경과 아름답게 어우러진 깊은 산 속에 있는 이곳에 들어서니 몸과 마음이 모두 긴장을 풀고 휴식에 들어갔다.   나는 프로그램이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에 주변으로 산책을 했다. 한참을 올라가다가 보니 ‘깊은 산 속 옹달샘’이라는 팻말 옆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었다.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혼자서 ‘깊은 산 속 옹달샘’ 노래를 흥얼거렸다.   한참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자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지금도 마음은 어린이 같은데 벌써 70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언제 세월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을까.   이곳에도 토끼와 노루가 찾아오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이 주변에 사는 많은 동식물의 수분 공급원이 된다는 것이다. 생물학에서는 이런 곳을 비오톱(biotope)이라고 부른다. 이런 역할과 비유해 이곳에 있는 수련원의 이름을 ‘깊은 산 속 옹달샘’이라고 지었으리라는 상상이 든다.   그래서 이곳을 도시에서 지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쉬며 새로운 힘을 얻게 하는 영혼의 쉼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는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특히 명상을 주로 하는 곳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와서 체험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숙소에 놓여있는 <더 사랑하고 싶어서/지은이 고도원>를 읽기 시작했다. “더 사랑하고 싶어서 밥을 먹는다. 더 사랑하고 싶어서 잠은 잔다. 더 사랑하고 싶어서 일한다. 더 사랑하고 싶어서 사람을 만난다.” <더 사랑하고 싶어서>라는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더 사랑하고 싶어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한다는 것이 아닌가. 무엇을 하든지 ”더 사랑하고 싶어서 “한다는 말에 나는 압도되어버렸다. 왜 나는 ”더 사랑하고 싶어서“라는 것을 실행하지 못할까. 그렇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이것을 실천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모두가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하다면 세상이 천국으로 변할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종이 울린다. 잠깐 멈춤의 시간이다. 멈춤의 시간은 걷다가도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고 숟가락을 들면 들은 그대로 멈추고 반찬을 집다가 종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멈춘다.   멈춤의 시간은 잠깐 명상을 한다. 사방이 고요하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명상을 통해 평온을 찾으며 꼭꼭 씹어서 천천히 음미하며 먹으라는 것이다.   ‘깊은 산 속 옹달샘’에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다. 바쁘고 빠르게 살다가 지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깊이 있게 명상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이다. 나는 수년 전에 주선애 교수를 통해 프랑스 ‘떼제 공동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곳은 수도원인데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침묵과 명상을 통해 수련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우리나라 강원도 태백에는 ‘예수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고 대천덕 신부가 시작한 수도원이다. 이곳 역시 하루 세 번은 종을 울리며 그때는 침묵을 통해 명상한다. 노동을 통해 땀을 흘리고 밥을 먹어야 하며 침묵과 명상을 통해 현재를 느끼며 평안을 맛보는 아름다운 시간을 갖게 한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은 마음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곳이다. 목표나 방향도 없이 천천히 걷으며 명상한다. 걷다가도 징이 울리면 멈춰서 명상 가운데 휴식한다. 팍팍한 도심을 떠나 자연 속에서 깊은 숨을 내쉬며 마음껏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점점 더 각박해지는 세태의 치열한 경쟁력 속에서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쉼을 제공한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 등 누구라도 올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멈춤을 통해 삶을 정리하며 평안을 찾게 함으로써 꿈 너머 꿈을 갖게 한다. 마치 옹달샘을 통해 갈증을 해소하고 원기를 회복하여 숲으로 돌아가는 노루나 토끼처럼 힘을 얻게 하는 곳이다.   저녁을 먹고 ‘비채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마음을 비우고 채우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비채방’이라고 한다. 통나무로 온몸을 마사지하면서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도록 한다. 생각을 지우고 또 다른 좋은 생각으로 채우는 경험이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맑게 하는 참 좋은 체험이다. 명상을 마치고 스파(spa)를 통해 온몸의 피로를 풀었다. 공기도 맑고 고요하며 아름다운 이곳에서 좋은 체험을 나 혼자 하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도서관을 찾았다. 많은 책 중에서 에크하르트 톨래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책을 뽑았다.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설렜다.   “문제가 있을 때 두고두고 마음 아프지 말고 오리가 되라. 오리는 진흙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툭툭 털어버리면 본래 그대로다.”   이 내용에서 나는 오랜 장마와 먹구름이 물러간 푸른 하늘처럼 마음이 밝아지고 시원해졌다. 문제가 있을 때, 오리처럼 툭툭 털어버리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하면 말을 할 수 있어도 실천하지는 못한다.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지금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한 현재를 사는 존재적 자각으로 존재적인 결단을 해야 시공의 속박을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며 영원과 연결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지금 여기에” 생생하게 깨어있으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의 문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느낌. 지금 내가 하는 일.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지금의 시간. 여기에서 나의 삶, 나의 꿈이 곧 나의 미래이기에 이 순간에 성실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현실주의와는 다르다. 현실에 갇혀 이기주의에 물든 삶은 지금을 잘못 인식해서 유한화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올바른 ‘지금’은 모두와 유기적으로 공유하고 공감함으로써 공명하는 거대한 하나로서의 울림이다.   박요섭 교수님의 강의 중에도 같은 내용이 있었다. 성찰은 언제나 ‘현재’, ‘여기’와 직결된다. ‘현재’와 ‘여기’는 실존을 인식하며 성찰과 존재적 가치를 확인하고 실현하는 지속을 이어가는 토대가 된다. ‘현재’와 ‘여기’라는 시·공간의 결집은 곧 과거와 미래를 생성하는 끊임없는 시간이며 터전이다.   ‘현재’와 ‘여기’가 없이 인문학적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원인 없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처럼 무의미하다. ‘현재’와 ‘여기’를 성찰하고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역사를 온고지신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제는 지난 나이고 내일은 다가올 나이다. 과거와 미래는 오늘로써 의미와 가치를 꽃피우는 것이다. ‘지금’은 카이로스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존재론적인 자각의 시간이다. 이 깨어있음이 존재적인 지평이고 존재론적인 결단으로 이어진다. 특별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이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길이다.   올 추석은 ‘지금’이라는 깨달음을 결실할 수 있었다. 이 깨달음은 인위적이거나 강압적이지 않아도 ‘더’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고 있다. 이제 나는 하늘 밑 드넓은 사랑의 대지에서 마음껏 ‘더’의 날개를 펴고 더욱더 사랑의 삶을 꽃피우며 살아갈 것이다. 취재위원 유정애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9-28
  • '시니어들의 인문학 여행'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해산의 고통 끝에 한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축복이다. 어느 누가 그 고통을 대신 할 수 있으며 기쁨을 알 수 있겠는가? 해산해 본 자만이 그 고통과 아픔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에는 행복을 안겨주는 신비로움이 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이다. 우리는 지난 9월 8일 이런 행복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고대하던 출판기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회원들은 모두 들뜬 기분이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던 분들까지도 이날만큼은 달랐다. 모두가 긴장 가운데에서도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하였다. 1부 식전행사부터 반응이 매우 좋았다. 축하하러 모여든 사람들로 강당은 가득했고 순서가 있을 때마다 뜨거운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도 한동안 그 열기가 가시지 않았다.       두 분의 교수님과 우리 회원들은 그동안에 깊이 숨겨 놓았던 감정들을 마음껏 쏟아 놓았다.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나 역시 어린아이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솔직히 나는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나를 마음껏 발산시켰다. 나도 모르게 뭔가 위대한 일을 해낸 용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회원들 모두가 소중하고 귀하다는 느낌이 마음 가득 밀려왔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동지들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하지 못 하는 것은 대상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 말이 나의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그동안 원우들과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지내왔다.   그런데 리허설을 하면서 혼선을 겪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가운데 방법을 찾고 의논도 하며 오랜 친구처럼 서로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더 일찍 이렇게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과 부끄러움도 있지만, 이제는 정말 한배를 탄 기분이 든다.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문득 사회를 보면서 부적합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감격스럽고 기쁜 나머지 원고에도 없는 말을 꺼내면서 적당치 않은 표현을 한 것이다.   윤봉구 어르신께서 수필을 낭독하신 다음, 사회자가 감사를 표하는 말에서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아뿔싸, “80세라는 연세는 숫자일 뿐 여전히 청춘의 마음으로 사시는”과 같은 표현이었어야 했는데 이를 어쩌랴.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괜히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에 얼굴까지 붉어졌다.     어르신과 가족들은 물론,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부적절함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드려 내용을 설명하고 사죄를 드리려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시며 자세한 것은 만나서 듣자면서 태연하게 웃어넘기신다. 그 대답에서 넉넉한 품격이 묻어나와 내 마음에 평안을 전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께서 먼저 내게 그동안 있었던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고 난 다음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껄껄 웃어넘기셨다. 그리고 맛있는 고기까지 사주시면서 오히려 나를 격려해주셨다. 정말로 넓고 깊은 생각으로 사시는 분이라는 생각에 감사가 밀려왔다.   어르신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어떤 꾸밈도 없으시다. 과장도 없으시다.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정직하시게 살아가신다. 가진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으시며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계신다. 윤봉구 어르신은 아들이 제발 건강검진도 받으시고 치아를 해 넣으시라고 간절히 부탁하지만, 내가 치아가 없어서 못 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 돈을 써야 하느냐고 말씀하셨다. .     차라리 그 돈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 그 학생들이 얼마나 좋아하며 공부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쉰들러 리스트의 이야기를 하신다. 쉰들러는 “금이빨 하나를 빼면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한 명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 돈으로 나를 위해서 쓸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독일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자신의 공장에 취직시키는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구한 사람이었다.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사업을 다 청산하였고 하나 남은 자동차까지 팔아가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했고, 심지어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런데 오늘 “쉰들러의 금이빨” 이야기를 하시다가 목이 메어 말씀을 이어가지 못하시는 어르신 앞에서 고개도 들기 부끄러웠고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르신은 지금까지는 특별한 소망이 없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았는데, 이번 출판기념회를 통해 할 일이 있다는 소망을 가졌노라며 더 큰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신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늙음은 낡음이 아니라 원숙함이다. 나는 이런 어르신을 보면서 정말 박요섭 교수님의 뜨거운 교육은 우리 시니어들에게 커다란 소망과 살만한 가치를 안겨주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감사하게 되었다.      어느 때는 잠을 설치기도 하시며, 어느 때는 굶어가며, 감기가 들어서도 어김없이 섬김의 자세로 우리와 함께하신 한국시니어협회 박 교수님에게 큰 박수를 보내 드린다. 《시니어들의 인문학 여행》이라는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을 위해 뜨거운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낌없이 헌신하신 그 수고를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이 한국시니어협회와 모두의 헌신과 열정이 이루어낸 결과이다.   ”보통 선생님은 지껄인다. 좋은 선생님은 잘 가르친다. 훌륭한 선생님은 스스로 해 보인다. 위대한 선생님은 가슴에 불을 지른다”는 말이 있다. 박 교수님이야말로 우리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그 불이 타 올라 이번에 《시니어들의 인문학 여행》이 나왔다.   나는 하나님께서 박 교수님을 특별 선물로 주셨다고 고백한다.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일도 하게 되었고, 신명 나는 강의까지 들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있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이 시간을 누리며 우리의 이모작 인생을 꽃피우고 행복하게 사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행복을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취재위원 유정애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9-22
  • 감사는 행복이다
       감사하면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다. 여행을 해보니 한국 사람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감사하다는 말에 익숙지 못한 것 같다. 서양인들의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겉으로만 보면 그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며 산다. 그래도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서구화 영향인지는 몰라도 우리 세대에 비해 감사하다는 표현을 잘하는 편이다.   왜 우리는 감사하다는 표현에 인색하고 익숙하지 못했을까. 동양인의 정적인 성향에서 오는 영향만은 아닐 것 같다. 개인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도 교만이나 탐욕과 불평 때문이 아닌가 싶다. 뭔가 큰 것을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이 부와 명예와 출세를 부추기고, 그 집념이 넉넉히 가지고도 부족함을 느끼게 하여 감사의 표현을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 우산장사와 짚신장사를 하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비가 내려도 걱정이고 그쳐도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감사를 잊고 걱정과 근심 속에 살아왔던 우리 선대들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하고 찾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얼마든지 많다.   나는 40세 무렵에 구두주걱을 분실한 일이 있었다. 그 구두주걱은 어느 개업식에서 선물 받은 것인데 스테인리스 제품으로 가죽고리가 붙어있었다. 오랫동안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다녔기에 반들반들한 것이 손에 익고 정도 들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씩 그 구두주걱은 나의 손 친구가 되었는데 어쩌다 잃어버린 것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날이 지날수록 구두를 신을 때마다 불편함이 느껴졌다. 아내에게 부탁하기도 그렇고 해서 직접 구하려 했으나 그게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하루의 생활이 너무 분주했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시작되는 기도회에 다녀온 후 간단한 산책, 그리고 아침식사와 출근으로 이어졌던 생활, 아침 7시 정도에 시내버스로 수원역에 가서 열차로 서울까지 한 시간 정도 입석으로 출근하고 역으로 퇴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젊었기에 가능하였던 일이다.   오후 6시 퇴근 후 시험을 대비해 종로에서 학원 수강을 마치고 귀가하여 자정이 가까워서야 취침하고 새벽 5시에 기도회에 다녀와 출근하자니 정말로 시간이었었다. 불편함을 감안하면 점심시간에 직장 근처에 잠깐 나가 사오면 될 터인데 사실 나는 그것을 어디서 사야할지도 몰랐다. 솔직히 좀 어리석고 게으른 면이 있었던 탓도 있었다.   약 열흘 쯤 지났을까. 융통성 없는 내 습관이 그대로 나타났다. 새벽기도 중에 갑자기 구두주걱 생각이 나서 어린애같이 그 것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곤 집에 들러 간편복을 갖추고 이웃 야산으로 짧은 산책을 나섰다. 구두주걱을 잃은 지 열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거닐던 그 산책로를 그날도 거닐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구두주걱이 산책로 바로 옆 풀밭 토끼풀 위에서 검정 가죽고리를 내밀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반갑고 기뻐서“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그 녀석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춤을 추었다. 순간 조금 전 새벽에 어린애처럼 기도했던 것이 떠올라 가슴 깊은 감사와 기쁨 속에 전율을 느꼈다.   그 때 구두주걱은 원망의 목소리로 속삭이듯 나에게 말하는 듯 했다. “주인님 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은 지가 벌써 열흘이나 되었답니다. 그동안 나를 못 본채 지나가 버릴 때마다 서운했는데 오늘 주인님의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주인님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 속으로 날아들고 싶었습니다. 지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주인님의 따뜻한 주머니 속에서 편안히 지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이곳에서 비바람 맞고 고생은 했지만, 토끼풀들이 함께해줘서 행복했습니다. 주인님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행운입니다.”   나는 그때 구두주걱이 속삭이듯 들려준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왜 행복했고 행운이었다고 했을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다가 어떻게 내게 보였을까? 그리고 왜 하필 구두주걱이 토끼풀밭에 떨어졌을까? 그러면 토끼풀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나? 이런 의문과 상상은 내게 궁금증을 더하게 했다.   흔히 네 잎 토끼풀은 행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어쩌다가 네잎 클로버를 찾아내면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하여 그 꽃말을 행운이라 했다. 아마도 그것은 희소성 때문일 것이다. 나도 어릴 때 동네 아이들과 풀밭에서 네 잎 토끼풀 찾기를 해본 적이 있다. 세 잎은 지천인데 네 잎 찾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성질 급한 나는 끝내 못 찾고 포기해버렸던 기억이 난다.   세 잎이 정상이고 네 잎은 돌연변이인데 왜 우리는 네 잎 토끼풀에서 행운을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꽃말을 찾아보니 네 잎 토끼풀은 행운을 상징한다. 그런데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뜻밖에 행복을 상징한다는 것에 놀랐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네 잎 토끼풀을 찾기 위해 무수히 많은 세 잎 토끼풀을 밟았다면 행운을 찾기 위해 무수한 행복을 밟아버리며 살아온 꼴이다. 행복을 제쳐두고 언제 찾아올는지 알 수도 없는 행운을 잡으려고 많은 시간과 재물을 소비한 셈이다. 네 잎 토끼풀 찾기에 집착하면 지천에 깔린 세 잎 토끼풀이란 행복의 가치를 인식할 수 없다. 이러니 행운만 붙잡으려고 달려가다가 결국 불행 속을 헤매고 다닌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뜬구름 같은 행운보다는 스스로 창출하는 행복이 훨씬 더 좋은 것이 아닌가.   나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 아주 평범한 일상생활에 있다고 본다. 특히 행복은 감사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은 것에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작정해 보며 감사한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많은 행성들 가운데 인간이 살기에 가장 알맞은 지구에 태어나 최적의 환경에서 살고 있지 않는가. 지금 내가 호흡하며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 아닌가? 만약 산소 호흡기를 사용한다면 그 생명을 유지하는 비용이 엄청 날 텐데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쓸 수 있는 햇빛의 가치는 전기세로 계산하면 얼마가 될까? 동식물이 햇볕으로 생육하여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들의 가치는 얼마인가. 모두가 감사한 것들이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 우리 몸을 실어주는 대중교통, 가족이 함께 의지하고 살 수 있는 집, 이런 것들이 우리 주변 지천에 깔려 있는 세 잎 토끼풀이 아닐까. 매일 다투지만 안 보이면 왠지 허전한 부부, 특별한 효도는 못해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자식들, 기력이 쇠하여 자식에게 기대어 살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계신 노부모님. 이런 모두가 우리에게 감사한 것들이다.   나는 스스로 다짐해 본다. ​큰 것보다 사소하고 작은 것부터, 기적적인 일보다 매일의 일상에서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남들에게 감사함을 받았을 때 기쁨은 당연하지만, 내 감사로 남이 기뻐하면 그 기쁨은 배나 커지지 않겠는가. 먼저 감사할 것을 찾아서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태도라 생각한다. 특별히 약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은 꼭 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아파트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청소를 깨끗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더니 매우 기뻐하는 모습으로“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순간이었지만 그 분의 얼굴에서 큰 기쁨을 읽을 수 있었고 나도 몹시 기뻤다. 또 한 번은 택시기사에게“안전운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화답하는 그의 모습에 감사함이 역력했다.   감사는 내게 참된 기쁨을 줄 뿐 아니라, 표현하면 할수록 그 감사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사를 계속하다 보면 불평과 불만이 없어질 것이고 감사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감사하는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며 모든 일에 좋은 관계를 이루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익이 생길 때만 감사하지 말고 지극히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보자. 그러면 그 순간 나의 삶은 가장 소중해지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의 근원은 감사하는 마음이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해질 것이다. 지금 그 구두주걱은 내 품에서 아쉽게도 사라졌지만, 감사하면 행복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줘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취재위원 최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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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13
  • 튤립을 기다리며
    작년 마늘 파종 때, 우리는 튤립 파종을 했다. “예쁘고 아름다운 내 딸들아! 내년에 튼실하고 예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부디 잘 자라다오.” 어느덧 서서히 봄기운 드리워지는 2월 어느 날 문득 튤립이 생각나 마당으로 나가니 땅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땅이 점차로 굵고 길게 갈라지더니, 드디어 초록색 고개를 세상에 내민다.   “아니! 벌써!” 튤립들은 부지런하고 용감했다. 그 추운 겨울 살을 에는 삭풍과 눈보라가 몰아쳐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이겨냈다. 아, 장하고 장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추운 땅속에서 생명의 불꽃을 잉태한 튤립이다.   요즘은 봄을 시샘하는 추운 날씨인데도 굴하지 않고 잘 자라준다. “그래, 지금이 마지막 고비야. 좀 더 튼실하고 아름다운 너희를 위해 하늘이 주신 선물이란다.”   머지않아 날씨도 따뜻해져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쯤, 여기저기서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등의 갖가지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엄마, 나 여기 있어요. 나도 살았어요. 나도요”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엄마 올해도 만나서 반가워요”라며 방긋방긋 웃을 튤립들을 기대한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골인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활짝, 활짝 얼굴을 내밀며 환희의 합창을 만들어 낼 합창단원들을 기다려 본다.   이래서 봄은 우리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기쁨이 솟아나게 하는 계절이다. 올봄 또 피어날 튤립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시집보낼 딸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처럼 살포시 설렌다. 이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늘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베푼 소중한 은혜가 아니겠는가. 취재위원 전영희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9-13
  • 인생 이모작의 항해를 시작하며
       나는 어느 날인가부터 글쓰기를 배우고 있다. 경험은 없지만, 열정으로 항해에 나설 작정이기에 기왕이면 이 항해를 위해 항해사가 되어볼 작정이다. 망망대해에서 육지로 접근해 오는 선박에 등대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내 글쓰기 항해의 등대는 무엇인가. 바로 인문학이다. 우리 인문학반이 등대하면 여기에서 등대지기는 박요섭 교수님이다.   나는 이 항해에서 이모작 시대를 열고 있다. 언젠가 열 것이 아니라, 지금 말이다. 인문학 전공에 음악이 복수 전공인 나는 이미 늙은이를 의미하는 노인을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부정적으로 사고하려는 마음의 싹도 잘라버렸다. 오직 새로움으로 하루하루를 창출하는 싱그러운 ‘현재인’으로 살고 있다.   지나온 내 일모작 삶은 모든 것이 은혜로 가득하다. 피난민으로 월남하여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빛낸 분들이 내 주변에서 나를 도왔다. 돌이켜보면 꿈만 같은 일들이다.   성산 장기려 박사님,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였던 손정희 박사님, 연세대학교 의대 교수였던 이현재 박사님, 돈화문신경외과 원장이셨던 손건 박사님, 서울적십자병원장을 지내신 현규환 박사님 등이 모두 나의 은인들이니 말이다.   특히 현규환 박사님은 내가 공인회계사 준비로 병을 얻었을 때, 지극한 치료로 낫게 해 주신 분이다. 이 모든 분을 연결한 중심에는 김운호 선생님이 계셨다. 독립운동 가문의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교육과 의식 운동을 이끄셨던 무명의 선구자였다.   나를 위로하고 이끌어준 친구들로는 이능희 공인회계사, 예비역 공군대령 심재윤, 총경으로 은퇴한 지경태, 이재호 형님 등이 있다. 나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아들은 한양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딸은 고려대학교 학부를 거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를 받고 그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니 자식 농사는 이만하면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제는 지난날에 대한 감사를 토대로 인생 이모작에 열과 성을 다하는 데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추후도 과시를 위함이 아니다.   감사함을 새기고 싶어서다. 아울러 지금 힘든 처지인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다. 사노라면 어려움도 슬픔도 겪을 수 있겠지만, 반드시 밝고 희망찬 날이 열릴 것이니 용기를 잃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 말은 누구보다도 지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비록 늦게 시작한 인문학과 음악 공부이지만, 청춘의 마음과 자세로 달릴 것이다. 우리 인문학반 40여 명의 동우들과 결집한 힘으로 출판할 책과 함께 올여름 작렬하는 태양처럼 새로운 이모작 인생을 열어볼 작정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9-13
  • 내게도 ‘스승의 날’이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의 나이가 있나요.” 요즘 시니어들에게 인기 있는 노랫말이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의 나이가 있나요.”   나는 변변하게 이렇다 할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우리 세대를 산 사람들이 대부분 격은 일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공부를 많이 못한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양, 마음 속 천형처럼 지우지 못하고 살았다.   공부대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돈을 벌었다.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되긴 했지만, 공부에 대한 아쉬움은 말 못할 비밀처럼 늘 가슴 한 구석에서 나를 울리곤 했다.   이런 마음으로 청춘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의 삶은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주었지만, 농사를 지으면서도 여유와 보람을 찾았다. 이런 보람에 약간의 걸림돌도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초월하며 산다.   사필귀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계절이 어김없이 도래하듯이 옳지 못한 일은 하늘이 심판하는 것을 우리는 인류사를 통해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다만 욕심에 눈이 어두워 이런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에게 하늘은 위로를 해주었다.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에 나오면서 방송미디어반에서 박요섭 박사님을 만났다. 연극에 관심이 있었기에 방송미디어에 대해서도 이해할 요량으로 수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큰 위로와 보상을 얻게 되었다. 방송미디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물론, 시도 쓰고 수필도 쓰게 되었다.   이어서 지금은 인문학반에서 공부하고 있다. 박요섭 박사님은 우리에게 박사과정을 담당하는 방법과 심정으로 지식을 전달한다. 어느 날 내가 쓴 글을 발표한 다음, 내 두 손을 꼭 붙잡고 이 글은 박사학위 못지않은 귀중한 결실이라며 위로와 힘을 주셨다.   나는 박요섭 박사님의 이 말을 들으며 마치 실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처럼 기뻤다. 올해 스승의 날에 우리는 박사님께 카네이션을 선물했다.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 모습이 어린소녀 같았다. 순간 내 마음이 울컥했다. 저 분이 내 청춘의 아쉬움을 회복케 한 스승이라는 감사가 밀물처럼 내 마음에 밀려왔다.   내 마음에서는 그동안의 공부에 대한 미련과 설음이 모두 씻겨 내려가면서 박요섭 박사님은 내 마음의 스승으로 확고하게 자리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옆 사람이 눈치라도 챌까 얼른 훔쳤다.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 인문학반은 내 공부에 대한 한과 설움을 모두 해결해준 최고의 대학이고 전공이 되었다. 지도 교수 박요섭 박사님은 내가 발산하지 못하고 가슴 깊이 숨겨둔 공부의 열정을 일깨우며 청춘의 아쉬움을 보상해준 소중한 멘토요, 스승이다. 그래서 올 해 스승의 날이야말로 내게 처음이자 가장 의미 있는 날이 되었다. 취재위원 서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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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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