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밥솥으로 벌어진 소동과 깨달음
[시니어투데이] 얼마 전 아내는 쓰던 전기밥솥이 잘 열리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고장이 난 것 같으니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예전부터 쓰던 것이니 15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부품도 두어 번 교환하고 안쪽에 든 솥도 바꾸고 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했으니 문제가 터질 때도 되었다.
밥솥을 사러 읍내에 있는 전자제품대리점에 갔다. 국내 전기밥솥 분야에서는 두 개 회사가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두 회사 제품이 전시돼 있긴 했지만, 마음에 맞는 모델이 고루 다 갖추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중에서 4인용으로 하나를 골라서 샀다.
예전에는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인공지능 기능까지 더해져 사용법이 무척 복잡했다. 자동세척, 간단 불림, 백미, 현미, 잡곡, 찰진 밥, 구수한 밥, 누룽지 등 메뉴도 많고 작동법도 다양해서 사용설명서를 익히려면 며칠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저녁때가 되어 밥을 지어야 했기에 일단 설명서를 대충 읽어본 다음 쌀을 씻어 넣고 스위치를 눌렸다. 밥이 다 된 것 같아서 열어보니 가운데만 먹을 만하고 가장자리는 두껍게 누룽지가 되어있었다. 우리가 처음 사용하다가 보니 조작을 잘못한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 후 남은 밥은 보온으로 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밥상을 차리려고 밥솥을 열어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남아있는 밥이 돌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부랴부랴 버리려고 내놓았던 옛날 밥솥에다 밥을 지었다. 잘 안 열리는 밥솥 뚜껑을 겨우 열어서 무사히 아침을 먹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것 같았다. 밥솥을 산 봉담에 있는 대리점보다는 수원에 있는 고객센터에 가서 작동법을 배워 오는 게 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터넷으로 고객센터 위치를 알아보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고객센터사무실 직원에게 밥솥에 들어있는 딱딱한 밥을 보여주면서 작동법을 배우러 왔노라고 설명했다. 직원이 밥솥에 전원을 연결하고 작동시켜보더니 고장이라고 했다. 고장확인서를 써주면서 이것을 산 대리점에 가서 보여주면 교환하거나 환불해 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어제 산 새것이 고장이 날 수가 있느냐고 의아해했더니, 직원은 가끔가다 그런 제품이 나온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구매한 대리점에 가서 고장확인서를 보여주었더니,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환불을 원하는지 물었다. 아내는 원하는 모델이 없으니 환불하고 다른 곳에서 사자고 해서 환불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 쇼핑센터에 들어가 보니 다양한 모델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아내는 밥솥에 보온을 작동시켜 조금 오래 두면 전력 소모도 되고 밥맛도 좋지 않으니 3인용으로 하자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골라 3인용을 주문했더니 이틀 만에 제품이 도착했다. 밥을 해보니 맛있게 지어져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에 밥솥을 바꾸는 경험을 하고 나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우리 시니어들에겐 복잡한 기능이 장착된 비싼 밥솥보다는 값싸고 기능이 간단한 밥솥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기능이 들어가는 만큼 가격은 비례하여 높아지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능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괜히 신경 쓰다가 보면 머리만 아파질 우려가 크다.
첨단 기능이 복잡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단하지만 질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밥솥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고 쉬운 작동만으로도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으면 된다. 다른 모든 것에서도 본질적 목적 실현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크게 필요치도 않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치렁치렁하게 매달고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에 충실했던 것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후의 삶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도 삶의 본질에 충실한 소박한 하루를 보람차게 살아야겠다.